2011. 2. 13. 19:43

훈련을 하다 보면 늘 한계가 온다.
근육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순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순간......
이런 순간이 오면 가슴속에서 뭔가가 말을 걸어온다.
'이정도면 됐어' '다음에 하자' '충분해' 하는 속삭임이 들린다.
이런 유혹에 문득 포기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때 포기하면 안한 것과 다를 바 없다.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려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끓지 않는다고 한다.
물을 끓이는 건 마지막 1도.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1분을 참아내는 것이다.
이 순간을 넘어야 그 다음 문이 열린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내 기대치를 낮추고 싶기도 했고,
다가온 기회를 모른 척 외면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하겠다고 마음 먹은 건 꼭 해야 하는 완벽주의자 같은 성격 탓도 있었지만, 
그 차이를 너무 일찍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99도와 100도의 차이.
늘 열심히 해도 마지막 1도의 한계를 버텨내지 못하면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아주 작은 차이 같지만 그것은 물이 끓느냐 끓지 않느냐 하는 아주 큰 차이다.
열심히 노력해 놓고 마지막 순간에 포기해 모든 것을 제로로 만들어 버리기는 싫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중요한 건, 마지막 1분. 그 한계의 순간이 아닐까 싶다.
-「김연아의 7분 드라마」中에서....






 
김연아 스케이트선수
출생 1990년 9월 5일 (경기도 부천)
신체 164cm, 47kg
혈액형 O형 
2010 미국 스포츠아카데미 올해의 여자 선수
2010 올해의 경기도 스포츠 스타상
2010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가장 인상적인 스포츠 선수 10인
2010 미국 여성스포츠재단 올해의 스포츠우먼
2010 제5회 자랑스런 한국인상
2010 미국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2010 ISU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2위
2010 제21회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
2009 제1회 대한민국 브랜드 이미지 어워드 문화예술부문
2009 제40회 경기도체육상 스포츠 스타상
2009 ISU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 1위
2009 제4회 앙드레김 베스트 스타 어워드 스타상
2009 스케이트 아메리카 여자 싱글 1위
2009 트로피 에릭 봉파르 여자 싱글 1위
2009 대한민국광고대상 모델상
2009 제47회 대한민국체육상 경기부문 최우수상
2009 ISU 세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1위
2009 제55회 대한체육회 체육상 우수상
2009 ISU 4대륙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1위
2008 대한민국 인재상
2008 윤곡여성체육대상 최우수선수상
2008 ISU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 2위
2008 제8회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스포츠부문상
2008 컵 오브 차이나 여자 싱글 1위
2008 스케이트 아메리카 여자 싱글 1위
2008 ISU 세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3위
2008 한국 이미지 새싹상
2007 ISU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 1위
2007 컵 오브 러시아 여자 싱글 1위
2007 컵 오브 차이나 여자 싱글 1위
2007 제12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최우수선수상
2007 대한민국 스포츠 레저 문화대상 특별상
2007 제3회 앙드레김 베스트스타어워드 스포츠스타상
2007 ISU 세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3위
2007 제53회 대한체육회 체육상 경기부문 최우수상
2007 제45회 대한민국체육상
2006 ISU 그랑프리 파이널 1위
2006 대한민국 국회대상 스포츠부문 대상
2006 제1호 글로벌인재상
2006 트로피 에릭 봉파르 여자 싱글 1위
2006 스케이트 캐나다 여자 싱글 3위
2006 ISU 주니어 세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1위
2005 제60회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시니어부 우승
2005 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 1위
2005 ISU 주니어 그랑프리 불가리아 대회 여자 싱글 1위
2005 ISU 주니어 그랑프리 슬로바키아 대회 여자 싱글 1위
2005 ISU 주니어 세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2위
2004 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 2위
2004 ISU 주니어 그랑프리 중국 대회 여자 싱글 2위
2004 ISU 주니어 그랑프리 헝가리 대회 여자 싱글 1위
2004 전국체육대회 우승
2003 골든베어대회 1위
2003 전국체육대회 우승
2002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트로피대회 노비스 부문 우승
2002 종별선수권 우승
2002 전국체육대회 우승
2001 종별선수권 우승
2000 종별선수권 우승
1999 전국체육대회 우승
Posted by Triany
2010. 10. 24. 19:50
나는 하루에 최소한 네 시간 동안, 대개는 그보다 더 오랫동안 일체의 물질적 근심걱정을 완전히 떨쳐버린채 숲으로 산으로 들로 한가로이 걷지 않으면 건강과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나는 단 하루라도 밖에 나가지 않은 채 방구석에만 처박혀 지내면 녹이 슬어버리고 오후 4시 - 그 하루를 구해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 가 넘어서, 그러니까 벌서 밤의 그림자가 낮의 빛속에 섞여들기 시작하는 시간에야 비로소 자리를 비울 수 있게 되면 고해성사가 필요한 죄라도 지은 기분이 든다.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나는 여러 주일, 여러 달, 아니 사실상 여러 해 동안 상점이나 사무실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지내는 내 이웃 사람들의 참을성, 혹은 정신적 무감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걷기」
Posted by Triany
2010. 9. 25. 15:37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그러나 시간은 또한 우리가 싫어하는 모든것, 모든 사람들, 우리를 증오하는 모든사람들, 그리고 또 고통, 심지어 죽음까지도 파괴하는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시간은 우리들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우리의 무든 상喪과 모든 고통의 원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


 나이가 먹을수록 나는 어린 시절에, 그리고 대학시절에 영재 학생이 되지 못했던 것을 애석해한다. 모든 책을 미친듯이 읽고 수학과 음악, 그리고 모든 지적  체조에 뛰어나고 모든 언어에 능통하다는 것. 인간의 모든 지식이 축적된 어마어마한 머리. 이쯤 되면 한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여행, 사랑, 나아가서는 온갖 발명을 대신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괴테의 작품 처음에 나오는 파우스트에 반대하고 나서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늙어가면서 자신이 세상 만사 모르는 것이 없지만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와 파우스트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극가 백과사전 못지 않은 지식을 갖춘 결과 자신은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 그 모든 것은 다 쓸데없는 잡동사니 지식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친구들처럼 술을 마시고 여자들의 뒤꽁무니나 따라다니는 편이 더 낫다는 결론을 얻어 낸다는 점이다.

 내가 볼 때 지식은 비길 데 없이 아름답고 심오한 것이다. 철학에는 기 이를 알 수 없는 빛이 있고 수학에는 온갖 절묘한 감칠맛이 있으며 여러가지 과학에는 전광석화와 같은 효율성의 열쇠가 담겨 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 무엇보다도 문학과 예술에는 장엄하고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풍요로움을 획득하려면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 아, 그 무슨 마술지팡이로 탁 건드려 다시 열살 먹은 어린이로 돌아가서 지금 내가 아는 것을 모두 다 알고 모든 것을 다시하고 더 보람있게, 더 강하게, 요컨데 완전하게 산다면. 그 어떤 완전한 삶을 영위한다면. <미셸2 혹은 완전한 삶>이라고 제목을 붙인 어떤 소설의 구상.
 '완전한 삶'에 있어서의 큰 문제 : 창조와 발명의 <총람>,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불균형, 결함 및 실수들?


*


 원하건 원하지 않건, 우리 자신이 의식적으로 전혀 개입하지 않은 채로, 삶이란 '여러시기들'의 연속이다. 규칙적으로 하나의 시기가 끝나면 또 하나의 시기가 시작된다.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심각한 병, 직업의 변화, 이사, 절교 등등. 흔히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는 것을, 분위기가 변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


 Si vis vitam para mortem(삶을 견디려거든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프로이드의 말-.
삶이 필요 불가결한 요소인 죽음, 충만하고 온전한 삶은 그 스스로의 죽음을 내포한다.
Posted by Triany
2010. 9. 13. 17:17

 늦은잠, 그대는 오랫동안 침대 위에 깨어 있다. 거리는 고요하고 이따금 정원에서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들어온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멀리 떨어진 도로에서는 터덜대는 마차 바퀴 소리도 들린다. 그대는 그 소리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다가 그 흔들거리는 소음이 마차의 스프링 소리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대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 채 끊임없이 마차를 따라간다. 마차는 모퉁이를 돌더니 그대의 존재를 눈치챈 듯 속도를 높이고, 성급한 뒷모습을 보이며 거대한 고요 속으로 사라진다.

 다음으로는 때늦은 행인이 나타난다. 그는 재빠른 몸짓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의 발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빈 거리에 메아리친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금 문을 닫는다. 거대한 고요가 찾아든다. 다시 또 다시 조그마한 생명의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점차 희미해지면서 잦아든다.

 그 다음에는 모든 사물과 생명들이 지쳐버린 듯, 나직한 바람소리와 양탄자 아래에 먼지 쌓이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 소리는 점차 커져 나른해진 감각을 자극한다. 잠은 오지 않고 짙은 피로감만이 두 눈 위로 미세한 상념을 드리운다.

 귓전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피 흐르는 소리, 곧이어 고통스러워지는 머릿속에서 미세한 생명의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가 우루린다. 사방으로 흩어진 혈관에서는 규칙적인 동시에 흐트러진 듯한 맥박의 고동이 느껴진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거나, 일어났다가 다시 누워도 변하는 것은 없다. 이는 어떤 방법으로도 헤어날 수 없는 무수한 시간들 중 한 순간일 뿐이다. 가지가지의 생각들과 감상, 회상의 동요들이 그대의 내면을 지배하는 순간, 지금 그대에게는 이 모든 것들을 함께 나누고 이겨낼 수 있는 친구조차 없다.

 타향살이를 하는 이들이라면 고향과 어린 시절의 푸른 지붕, 정원들, 자유롭고 결코 잊혀지지 않을 듯한 소년 시절, 하루 종일 마음껏 뛰어놀았던 숲들과 마구 뒹굴어도 누국도 간섭하지 않던 작은 다락방, 층층이 어둠과 빛이 어우러져 있던 계단들이 떠오르리라.

 도한 문득 낯설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늘 진지한 눈빛을 보여주시던 늙으신 부모님과 그 눈가에 어리던 사랑과 근심, 근엄한 호통들도 떠오를 것이다. 그대는 손을 내밀어 그것들을 잡으려고 하지만 헛수고다. 이어 걷잡을 수 없는슬픔과 고독이 엄습해오고, 그 위로 다른 영상들이 하나 둘 겹쳐진다.

 이 순간, 어떤 감정에 진지하게 사로잡히며 그대는 모든 것들이 슬프게만 느껴진다 젊은 시절,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통을 줘보지 않은 이는 없다. 우리는 그들의 사랑을 거부하고 그들의 호의를 무시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마련된 행복을 반항심과 자만심으로 잃어버렸다. 타인과 자신의 경외심을 손상시키고 멍청한 말을 내뱉거나 약속을 어겨보지 않은 이가 과연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지금 그들은 그대의 앞에 서서 말없이 조용한 눈길로, 그러나의아함이 가득한 눈길로 그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 순간 그대는 그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대는 얼마나 많은 번민과 쾌락으로 가득 찬 밤, 아무 죄책감 없이 바로 이 침대 위에서 잠들었던가. 또한 과묵하고 꾸밈없는 감정을 느꼈던 것은 얼마나 오래전 일인가. 이제는 그대는 분별없이 살아왔으며, 수없이 보고 듣고 말하고 웃었을 것이다.

 현재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듯 낯설어져 그대로부터 멀어져가고, 반면 그대의 유년 시절의 푸른 하늘과 오래전에 잊혀진 고향의 추억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목소리가 소름끼칠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와 그대의 현실이 된다.

 잠이란 자연의 가장 값진 선물 중 하나다. 그것은 당신의 친구이자 애인이며, 마술사인 동시에 조용한 위안자다. 게속되는 불면의 고통을 알고 있는 자, 30분간의 짧은 열병 같은 졸음에 빠졌다가 경우 잠드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자. 그들은 진실로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나는 생애를 통틀어 한번도 잠 못 이루는 밤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을 결코 좋아할 수 없다. 그는 가장 천진스러운 영혼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마비되어가는 우리의 재빠른 인생 가운데 영혼이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시간, 즉 감각의 생활과 정신의 생활이 밀려나고, 영혼이 진실되게 회상과 양심의 거울 앞에 서게 되는 시간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체험할 대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관 옆이나 병상 혹은 길고도 고독한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온 처음 볓 시간이 바로 그러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깊은 슬픔과 고통도 혼탁한 감정에 부딪히면 쉽사리 그 순수성을 잃는다.

 바로 여기에 하얗게 지새운 밤들의 가치가 있다. 이러한 밤에 이르러야만 우리의 영혼은 특별한 외부의 충격 없이도 올바른 것이 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놀라움, 두려움, 비극으로 향한다 해도 말이다. 우리가 낮 시간 동안 영위하는 정서적 생활은 그다지 순수핮 못하다. 우리는 언제나 감각의 격렬한 움직임 속에서, 이성과 감정이 섬세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살아간다. 영혼은 반쯤 졸면서 이러한 일들을 방치하고, 인간은 이러한 예속과 억압의 상태에서 여러 날, 여러 달 동안 반쪽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가 육신이 잠든 영혼만의 시간이 찾아오면, 이 잠 못 이루는 밤 동안 우리는 현실의 사슬을 풀어버리고 생명으로 충만한 영혼의 존재를 발견하곤 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 인생이 형식적 일 뿐만은 아니라는 사실, 우리의 내면에는 결코 외적인 것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위력적인 존재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결코 우리의 뜻대로 할 수 없는 목소리가 우리의 내면에 커다란 울림을 자아내고 있다는 것 또한 깨달을 것이다. 진실된 자와 진실된 신앙을 가진 자는 기꺼이 이러한 목소리에 경의를 표하고, 심오해진 내면을 통해 그러한 시간들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제 나는 불면일라는 '질병'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이는 어쩌면 쓸데없는 일일 수도 있으리라. 잠 못 이루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흥미를 가질 수도 있으리라. 그것은 바로 잠 못 이루는 상태가 가져다주는 장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질병 그리고 기다림, 이 모든 것은 분명 교육적인 것들이다. 특히 초조한 고통의 교훈은 그 무엇보다도 깊은 감동을 준다.

 말과 행동을 지나치게 조심하여 섬세한 관용을 보이는 인간을, 우리는 흔히 '몹시 큰 괴로움에 한번쯤 시달렸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육체와생각을 지배하고자 한다면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섬세한 생각과 관용은 오직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부드러운 관찰력과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사물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영혼을 깊숙이 꿰뚫어보며, 모든 인간적인 약점을 선한 마음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잠 못 이루는 밤의 고독한 정적 속에서 자유분방한 사고를 경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불면이 가지는 또 하나의 가치는 다른 관계를 통해 더욱 상세히 관찰된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경외심의 포화를 의미한다. 그것은 모든 사물에 대한 경외심,  즉 검소한 인생에까지 향기를 쏟아 부을 수 있는 경외심과, 시적이며 위대한 예술에 대한 경외심이다.
 
 어떤 이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있다고 상상해 보자. 시간은 묵묵히, 지겹게 느껴질 만큼 천천히 흘러간다. 처음 치는 종소리와 다음 시각에 울리는 종소리 사이에 견디기 힘든 무한성의 넓고도 깊은 심연이 가로막혀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쥐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마차 굴러가는 소리,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 분수가 흘러 넘치는 소리, 그리고 바람 소리를 들어왔는가. 그 순간 우리는 별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고도 얼마든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 고독과 영원한 고요 속에서 그리움에 가득 찬 마음으로 우리 곁은 스쳐가는 모든 생명의 입김에 입술을 갖다댄다. 우리는 마차가 굴러가는 소리를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말들의 피로한 얼굴이나 남은 힘을 추측해 보는가 하면, 그 마차가 달리고 있는 거리와 골목길이 어디쯤인지를 정확히 알고 싶어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또다시 솟아오르는 분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는 환자가 문병객으로부터 바깥 생활의 광채를 전해 듣듯 감사하는 마음으로 분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물줄기로 가득 찬 분수가 활기차게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수조(水槽)에서는 보다 유연하고 불규칙적인 물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그 끊임없는 속삭임 속에서 하나의 리듬을 찾아낸 뒤 함께 박자를 맞추어 흥얼거리다가 다시 입을 다물고 그 노랫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마치 꿈을 꾸듯 시냇물과 강물을 지나 바다로 흘러가는 물을 생각하고, 다시 영원한 생셩과 사멸의 요람을 생각한다. 그 너머에서 영혼의 움직임, 몽롱한 사상의 체계가 형성됨으로써 헝클어져 도무지 알 수 없을 것처럼 여겨지던 우리의 인생은 비로소 극 형체를 분명히 드러낸다.

 하나의 분수에 귀를 기울이는 일부터 시작해 모든 사건의 논리성에 대한 경탄, 베일로 가려진 인생 최후의 비밀에 대한 경외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잠 못 이루는 밤이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을 그토록 주의 깊이 생각할 수 없으리라.

 따라서 잠 못 이루는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통속에서 덕망을 창조하게 된다. 나는 그들이 괴로움 속에서 인내를 가지기 바라는 동시에 적절히 그 고통을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경박하거나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이따금씩 잠 못 이루는 밤이 찾아와, 그들로 하여금 자리에 누워 내면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하사하기를 바란다.

헤르만 헤세 『젊은 날의 초상』中에서..
Posted by Triany
2010. 9. 13. 16:49
 모든 고뇌는 시간으로 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괴로움도 두려움도 그 실체는 바로 시간에 있다. 시간을 극복하고 시간 자체에 대한 관념을 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의 모든 곤란과 불화를 극복할 수 있다.

 암흑, 위로해줄 이조차 없는 어둠, 이는 두려운 일상의 반복 속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드는 걸까? 어린아이와 미개인, 건강한 젊은이들과 동물들은, 하루가 가고 또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깊은 사색과 고민에 빠져 보지 않은 이들은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며 즐거워하고, 이를 바꾸려는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은 매일같이 진실한 생활을 갈망하고, 그 같은 순간이 번개처럼 내리칠 때마다 행복을 느끼며 인생 전체의 의의와 목적에 대한 모든 상념들과 시간의 의의를 마음속에서 지워버린다. 그리고 이야말로 진정 창조적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순간은 조물주와 합일하는 순간이며, 이때는 평상시라면 우연에 불과한 것들마저도 오랜 염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이 어둠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순간이 너무 밝기 때문이며, 생활이 괴롭고 옹졸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 순간이 마법과 같이 가볍고 자유로운 희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벨이 울리지 않거나, 난로가 그을리거나, 기계의 톱니바퀴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그것을 살펴서 고장난 곳을 수리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내부의 기계, 생의 의미를 증폭시키는 비밀의 스프링과 삶과 슬픔, 희열을 느끼며 행복을  체험하는 능력을 가진 저 내부의 기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마음이 병들면 그 무엇으로도 그것을 치료하지 못한다.

 우리는 분노, 초조함, 거짓말 등으로 인해 우리의 아름답고 짧은 생을 따분한 것으로 만든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악덕들과 우리를 추하게 만든 더러운 이웃들, 모든 부스럼은 오랜 세월을 걸친 철저한 고뇌와 괴로움의 불꽃으로불태워야  한다.

 곱사들이에 병을 앓고 있던 사내, 보피는 현자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이해와 헌신에 가득 찬 인간이었다. 그는 고뇌와 두려움을 넘어 부끄럼 없이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신에게 의지하려고 했다. 언젠가 나는 그에게, 과연 어떤 믿음으로 육체의 고통을 극복하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빙긋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아주 단순합니다."

 나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와 병은 서로 끝없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전투에서는 이기고, 또 어떤 전투에서는 져가며 계속해서 격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또한 때에 따라서는 움직임을 멈추고 휴전을 체결하기도 하지요. 서로의 동정을 살피거나 매복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한쪽이 다시금 위세를 부리게 되므로 또다시 싸울 수밖에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병들어 있다. 안타깝지만 당신의 병은 한창 유행하고 있는 돌림병의 일종이다. 세상의 어떤 의사들도 이 병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한마디로 이 병은 도덕적 착란증과 유사한 것으로, 개인주의 또는 망상적 고독이라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현대의 거의모든 책들이 이 병을 내포하고 있으며, 당신의 마음속에도 이 병은 존재한다. 당신은 스스로가 언제나 혼자이며, 누구도 당신을 보호하거나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망상에 젖어 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으이 병이 육체적인 것이라 의사의 처방만으로 나을 수 있다면, 당신은 일단 시키는 대로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권하는 것은, 바로 그런 식의 처방이다. 당분간은 자신의 일보다는 타인의 일은 생각하는 연습을 하라. 그것만이 이 병의 유일한 치료법이다.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 그것은 헛되다. 누군가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 제대로 된 평가를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정당한 평가를 해주려고 노력하라.

 인생은 언제나 그 당사자에게는 즐겁지 않은 것이다. 생에 대한 애착을 버림으로써 자유를 획득하라. 기꺼기 무거운 짐을 지고, 사소한 안락 따위는 버릴 수 있다고 대범하게 생각하라.



-헤르만 헤세 『젊은 날의 초상』 中에서..
Posted by Tri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