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5. 21:49

[유쾌한 상상. 유쾌한 가정] 그리스의 위대한 왕.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방으로 쳐들어가지 않고 서쪽으로 향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고대에도 역사를 기술할 때 '만약'이라는 가정은 금기로 되어 있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나 자기가 직접 들은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이 역사이고, '만약'이라는 가정을 쓰는 것은 '히스토리아'에서는 올바르지 않은 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고대 역사가들 가운데 이런 종류의 서술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오직 리비우스만은 '유쾌한 가정'이라고 전제해놓고 여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로마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맞붙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고.
 리비우스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알렉산드로스가 상대였다 해도 최종적으로는 로마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첫째, 리비우스는 우선 알렉산드로스가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직 운명이 바뀌기 전인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기록에 따르면 애완용 원숭이 두마리에게 물려 생긴 패혈증으로 죽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의 군대에는 지휘관이 대왕 한 사람이었던 반면, 같은 시기의 로마군에는 적어도 11명의 뛰어난 지휘관이 있었다. 로마에는 지휘관 자리가 비어도 대신할 사람이 항상 있었다는 뜻이다.

   둘째, 로마군의 엄정한 규율은 알렉산드로스 군대의 규율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고, 400
년의 유구한 전통을 가진 로마군 병사들의 사기와 10여 년 만에 양성된 마케도니아군 병사들의 사기는 전통으로 보아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지휘관이 사기를 북돋울 수도 있지만, 병사 개개인의 가슴 속에 축적된 자신감이야말로 사기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알렉산드로스 개인의 전략과 전술적 재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마군은 다리우스 왕의 병사들이나 인도 병사들과는 다르다. 로마인은 페르시아인이나 인도인처럼 사치에 익숙지 않았다. 
 실질 강건을 당연하게 여겼던 당시의 로마 남자들과 싸웟다면 아무리 알렉산드로 대왕이라 해도 유약한 민족과 싸울 때처럼 승전에 승전을 거듭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넷째, 로마와 알렉산드로스의 전쟁은 조직과 개인의 대결이고, 알렉산드로스에게 남아 있었던 10여년 기간으로는 아무리 그의 재능이 뛰어났다 해도 효율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는 조직에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수는 없었으리라는 것이 리비우스가 든 네번째 이유다.
리비우스는 "전사 개개인은 각자의 운명에 따라 살거나 죽는다. 하지만 로마에서는 한 전사의 죽음이 당장 국가적인 손실과 결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섯번째 이유는, 마케도니아군과 로마군의 보병군단이 각각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케도니아의 중무장 보병군단은 한 덩어리가 된 공격에 강하고 방어에도 유리하지만 중대의 연합체인 로마의 중무장 보병군단은 기동성이 뛰어나고 전술 전환에 즉각 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섯번째 이유는, 적지에서 싸우는 알렉산드로스에 비해 자국 영토안에서 싸울 수 있는 로마군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특히 로마는 '로마 연합'에 가입한 식민지와 동맹국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들은 로마와 긴민한 관계로 맺어져 있어서, 아무리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 해도 이 촘촘한 그물을 간단히 돌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리비우스가 마지막으로 든 이유는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전투에 패하는 것이 곧 전쟁에 패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로마군의 전통은 전투의 패배가 전쟁의 패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었다."고 말한다.

                       
-[로마인 이야기 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中에서..]p.234~236

Posted by Tri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