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13. 17:17

 늦은잠, 그대는 오랫동안 침대 위에 깨어 있다. 거리는 고요하고 이따금 정원에서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들어온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멀리 떨어진 도로에서는 터덜대는 마차 바퀴 소리도 들린다. 그대는 그 소리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다가 그 흔들거리는 소음이 마차의 스프링 소리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대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 채 끊임없이 마차를 따라간다. 마차는 모퉁이를 돌더니 그대의 존재를 눈치챈 듯 속도를 높이고, 성급한 뒷모습을 보이며 거대한 고요 속으로 사라진다.

 다음으로는 때늦은 행인이 나타난다. 그는 재빠른 몸짓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의 발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빈 거리에 메아리친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금 문을 닫는다. 거대한 고요가 찾아든다. 다시 또 다시 조그마한 생명의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점차 희미해지면서 잦아든다.

 그 다음에는 모든 사물과 생명들이 지쳐버린 듯, 나직한 바람소리와 양탄자 아래에 먼지 쌓이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 소리는 점차 커져 나른해진 감각을 자극한다. 잠은 오지 않고 짙은 피로감만이 두 눈 위로 미세한 상념을 드리운다.

 귓전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피 흐르는 소리, 곧이어 고통스러워지는 머릿속에서 미세한 생명의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가 우루린다. 사방으로 흩어진 혈관에서는 규칙적인 동시에 흐트러진 듯한 맥박의 고동이 느껴진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거나, 일어났다가 다시 누워도 변하는 것은 없다. 이는 어떤 방법으로도 헤어날 수 없는 무수한 시간들 중 한 순간일 뿐이다. 가지가지의 생각들과 감상, 회상의 동요들이 그대의 내면을 지배하는 순간, 지금 그대에게는 이 모든 것들을 함께 나누고 이겨낼 수 있는 친구조차 없다.

 타향살이를 하는 이들이라면 고향과 어린 시절의 푸른 지붕, 정원들, 자유롭고 결코 잊혀지지 않을 듯한 소년 시절, 하루 종일 마음껏 뛰어놀았던 숲들과 마구 뒹굴어도 누국도 간섭하지 않던 작은 다락방, 층층이 어둠과 빛이 어우러져 있던 계단들이 떠오르리라.

 도한 문득 낯설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늘 진지한 눈빛을 보여주시던 늙으신 부모님과 그 눈가에 어리던 사랑과 근심, 근엄한 호통들도 떠오를 것이다. 그대는 손을 내밀어 그것들을 잡으려고 하지만 헛수고다. 이어 걷잡을 수 없는슬픔과 고독이 엄습해오고, 그 위로 다른 영상들이 하나 둘 겹쳐진다.

 이 순간, 어떤 감정에 진지하게 사로잡히며 그대는 모든 것들이 슬프게만 느껴진다 젊은 시절,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통을 줘보지 않은 이는 없다. 우리는 그들의 사랑을 거부하고 그들의 호의를 무시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마련된 행복을 반항심과 자만심으로 잃어버렸다. 타인과 자신의 경외심을 손상시키고 멍청한 말을 내뱉거나 약속을 어겨보지 않은 이가 과연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지금 그들은 그대의 앞에 서서 말없이 조용한 눈길로, 그러나의아함이 가득한 눈길로 그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 순간 그대는 그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대는 얼마나 많은 번민과 쾌락으로 가득 찬 밤, 아무 죄책감 없이 바로 이 침대 위에서 잠들었던가. 또한 과묵하고 꾸밈없는 감정을 느꼈던 것은 얼마나 오래전 일인가. 이제는 그대는 분별없이 살아왔으며, 수없이 보고 듣고 말하고 웃었을 것이다.

 현재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듯 낯설어져 그대로부터 멀어져가고, 반면 그대의 유년 시절의 푸른 하늘과 오래전에 잊혀진 고향의 추억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목소리가 소름끼칠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와 그대의 현실이 된다.

 잠이란 자연의 가장 값진 선물 중 하나다. 그것은 당신의 친구이자 애인이며, 마술사인 동시에 조용한 위안자다. 게속되는 불면의 고통을 알고 있는 자, 30분간의 짧은 열병 같은 졸음에 빠졌다가 경우 잠드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자. 그들은 진실로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나는 생애를 통틀어 한번도 잠 못 이루는 밤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을 결코 좋아할 수 없다. 그는 가장 천진스러운 영혼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마비되어가는 우리의 재빠른 인생 가운데 영혼이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시간, 즉 감각의 생활과 정신의 생활이 밀려나고, 영혼이 진실되게 회상과 양심의 거울 앞에 서게 되는 시간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체험할 대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관 옆이나 병상 혹은 길고도 고독한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온 처음 볓 시간이 바로 그러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깊은 슬픔과 고통도 혼탁한 감정에 부딪히면 쉽사리 그 순수성을 잃는다.

 바로 여기에 하얗게 지새운 밤들의 가치가 있다. 이러한 밤에 이르러야만 우리의 영혼은 특별한 외부의 충격 없이도 올바른 것이 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놀라움, 두려움, 비극으로 향한다 해도 말이다. 우리가 낮 시간 동안 영위하는 정서적 생활은 그다지 순수핮 못하다. 우리는 언제나 감각의 격렬한 움직임 속에서, 이성과 감정이 섬세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살아간다. 영혼은 반쯤 졸면서 이러한 일들을 방치하고, 인간은 이러한 예속과 억압의 상태에서 여러 날, 여러 달 동안 반쪽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가 육신이 잠든 영혼만의 시간이 찾아오면, 이 잠 못 이루는 밤 동안 우리는 현실의 사슬을 풀어버리고 생명으로 충만한 영혼의 존재를 발견하곤 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 인생이 형식적 일 뿐만은 아니라는 사실, 우리의 내면에는 결코 외적인 것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위력적인 존재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결코 우리의 뜻대로 할 수 없는 목소리가 우리의 내면에 커다란 울림을 자아내고 있다는 것 또한 깨달을 것이다. 진실된 자와 진실된 신앙을 가진 자는 기꺼이 이러한 목소리에 경의를 표하고, 심오해진 내면을 통해 그러한 시간들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제 나는 불면일라는 '질병'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이는 어쩌면 쓸데없는 일일 수도 있으리라. 잠 못 이루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흥미를 가질 수도 있으리라. 그것은 바로 잠 못 이루는 상태가 가져다주는 장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질병 그리고 기다림, 이 모든 것은 분명 교육적인 것들이다. 특히 초조한 고통의 교훈은 그 무엇보다도 깊은 감동을 준다.

 말과 행동을 지나치게 조심하여 섬세한 관용을 보이는 인간을, 우리는 흔히 '몹시 큰 괴로움에 한번쯤 시달렸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육체와생각을 지배하고자 한다면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섬세한 생각과 관용은 오직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부드러운 관찰력과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사물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영혼을 깊숙이 꿰뚫어보며, 모든 인간적인 약점을 선한 마음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잠 못 이루는 밤의 고독한 정적 속에서 자유분방한 사고를 경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불면이 가지는 또 하나의 가치는 다른 관계를 통해 더욱 상세히 관찰된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경외심의 포화를 의미한다. 그것은 모든 사물에 대한 경외심,  즉 검소한 인생에까지 향기를 쏟아 부을 수 있는 경외심과, 시적이며 위대한 예술에 대한 경외심이다.
 
 어떤 이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있다고 상상해 보자. 시간은 묵묵히, 지겹게 느껴질 만큼 천천히 흘러간다. 처음 치는 종소리와 다음 시각에 울리는 종소리 사이에 견디기 힘든 무한성의 넓고도 깊은 심연이 가로막혀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쥐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마차 굴러가는 소리,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 분수가 흘러 넘치는 소리, 그리고 바람 소리를 들어왔는가. 그 순간 우리는 별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고도 얼마든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 고독과 영원한 고요 속에서 그리움에 가득 찬 마음으로 우리 곁은 스쳐가는 모든 생명의 입김에 입술을 갖다댄다. 우리는 마차가 굴러가는 소리를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말들의 피로한 얼굴이나 남은 힘을 추측해 보는가 하면, 그 마차가 달리고 있는 거리와 골목길이 어디쯤인지를 정확히 알고 싶어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또다시 솟아오르는 분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는 환자가 문병객으로부터 바깥 생활의 광채를 전해 듣듯 감사하는 마음으로 분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물줄기로 가득 찬 분수가 활기차게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수조(水槽)에서는 보다 유연하고 불규칙적인 물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그 끊임없는 속삭임 속에서 하나의 리듬을 찾아낸 뒤 함께 박자를 맞추어 흥얼거리다가 다시 입을 다물고 그 노랫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마치 꿈을 꾸듯 시냇물과 강물을 지나 바다로 흘러가는 물을 생각하고, 다시 영원한 생셩과 사멸의 요람을 생각한다. 그 너머에서 영혼의 움직임, 몽롱한 사상의 체계가 형성됨으로써 헝클어져 도무지 알 수 없을 것처럼 여겨지던 우리의 인생은 비로소 극 형체를 분명히 드러낸다.

 하나의 분수에 귀를 기울이는 일부터 시작해 모든 사건의 논리성에 대한 경탄, 베일로 가려진 인생 최후의 비밀에 대한 경외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잠 못 이루는 밤이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을 그토록 주의 깊이 생각할 수 없으리라.

 따라서 잠 못 이루는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통속에서 덕망을 창조하게 된다. 나는 그들이 괴로움 속에서 인내를 가지기 바라는 동시에 적절히 그 고통을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경박하거나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이따금씩 잠 못 이루는 밤이 찾아와, 그들로 하여금 자리에 누워 내면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하사하기를 바란다.

헤르만 헤세 『젊은 날의 초상』中에서..
Posted by Triany